[프레스큐=정희도 기자] 『맨얼굴의 독립운동사』 진명행 작가 인터뷰
역사를 바라보는 익숙한 서사에 도전장을 내민 책이 출간됐다. 진명행 작가의 신간 『맨얼굴의 독립운동사』는 우리가 알고 있던 독립운동의 영웅 신화를 다시 점검하며, 사료에 기반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 논쟁 속에서 역사를 다시 보게 됐다
프레스큐: 작가님께서는 이번 책에서 기존의 독립운동사 서술에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집필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진명행: 시작은 2000년대 초반 학생운동권과의 논쟁이었습니다. 당시 그들의 정세관은 대한민국을 친일세력이 세운 국가로, 북한을 정통성을 가진 국가로 보는 왜곡된 역사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시각이 오늘날의 사회 문제를 기득권 구조 탓으로 단정하는 왜곡을 낳는다고 보았습니다. 국민들의 역사 인식 틀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집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 3·1운동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 속의 다양한 모습이었다
프레스큐: 책에서 다루신 3·1운동 부분이 특히 눈길을 끕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사와는 차이가 있는데요.
진명행: 교과서 속 3·1운동은 지나치게 성역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민중들 사이에서 다양한 요구와 불만이 분출된 사건이었고, 단일한 민족주의 운동이라기보다 근대화 과정의 갈등과 생존 투쟁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국제 정세에 대한 오해와 유언비어의 영향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저는 민족자결주의의 ‘이상’보다는 당시 조선 민중들의 현실적 문제에 주목했습니다.
■ 파란 눈의 애국자?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프레스큐: 헐버트, 베델 등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평가도 새로웠습니다.
진명행: 흔히 그들을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나 개인적 이익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한 신앙적 의미는 분명 존재하지만, 이들을 일방적으로 ‘애국자’로 미화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사료를 통해 그들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유관순 신화도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프레스큐: 유관순 열사 관련 서술 역시 독자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진명행: 오랫동안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한 열사’라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굳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사망 경위를 추적하면 사실과 다른 점, 과장된 면이 드러납니다. 증언의 신빙성을 따져보면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정 인물을 신화로 떠받드는 과정에서 다른 사실들이 배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비자금, 무장투쟁, 그리고 영웅들의 또 다른 얼굴
프레스큐: 책 후반부에는 고종의 비자금, 홍범도 장군 등도 다뤄지는데요.
진명행: 독립운동사의 또 다른 민낯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비자금 문제, 위조 문서를 통한 왜곡, 무장 조직 내부의 갈등과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감춰져선 안 됩니다. 특히 홍범도는 단순한 영웅 이미지에 가려진 복잡한 행적이 있습니다. 봉오동 전투 이전 그는 공산주의 선전활동을 위해 만주로 건너간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흠집을 내고자 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를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 팩트에 기반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프레스큐: 결국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진명행: 역사는 팩트 위에 서야 합니다. 영웅 신화와 민족주의 담론이 감동을 줄 수는 있지만, 사실을 가릴 때가 많습니다. 이번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인 이야기들을 다시 점검하고,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마주하자는 제안입니다. 그것이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명행 작가는 오랫동안 독립운동사 연구와 사료 비판 작업을 이어온 역사 연구자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시작된 문제의식은 국내외 기록물과 증언을 직접 추적하는 과정으로 이어졌으며, 이번 책은 수년간의 사료 분석과 토론 끝에 완성됐다. 그는 신화적 영웅 서술을 답습하기보다, 불편하더라도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역사 연구자의 책무라고 강조한다.
『맨얼굴의 독립운동사』는 우리가 익숙하게 믿어온 ‘영웅 만들기’의 틀을 넘어 숨겨져 있던 진실들을 드러낸다. 독자에 따라 불편할 수 있지만, 건강한 역사 인식을 위해 필요한 문제 제기다.
역사는 감동의 서사가 아니라 사실의 축적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오늘 우리의 역사 교육과 기억 방식에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