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뱃지

[프레스큐=공경진 기자] 정치권이 스스로를 정의라 부르며 상대를 악으로 몰아붙이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정의는 힘 있는 자의 독선이다. 자신이 정의라 생각하는 순간,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은 악이 된다.”라는 말처럼, 지금 대한민국 정치의 풍경은 권력을 쥔 이들의 독선으로 가득 차 있다.

민생은 고통스럽다. 물가는 오르고 청년들의 일자리는 불안정하며, 사회 곳곳에서 안전망의 구멍이 드러난다. 그러나 정부는 책임 있는 대책보다 변명과 책임 전가에 급급하다.

김해 동상시장

최근의 전산망 사고와 공무원의 비극적 죽음, 혼란스러운 외교·안보 현안들까지, 국민이 기대한 ‘책임 있는 정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마치 자신들이 국가의 정의를 대변한다고 믿는 듯, 고개 숙일 순간에도 오히려 정당성을 주장하며 정치적 방패 뒤로 숨어버린다.

다수당인 여당의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회를 수적 우위로 지배하며 ‘우리만의 정의’를 밀어붙인다. 토론과 절차는 형식에 불과하고, 다른 의견은 무시된다.

‘다수가 곧 정의’라는 착각은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하나로 단순화한다. 그 과정에서 소수 의견은 사라지고, 국회는 협의와 타협의 공간이 아니라 힘으로 상대를 꺾는 전쟁터가 된다.

야당이라고 자유롭지 않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본래 역할을 지키기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에 머물러 있다.

여당의 독선과 정부의 무책임을 비판하면서도, 국민에게 필요한 대안을 내놓는 데는 소홀하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은 여당의 독선도, 야당의 무능도 바라지 않는다. 원하는 것은 현실적인 해법과 책임 있는 정치다.

정치가 정의를 독점하는 순간, 정의는 독선으로 변질된다. 지금 정치권 전체가 그 함정에 빠져 있다. 국민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는데, 정당들은 자신들의 진영논리 안에서만 ‘정의’를 외친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도구이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정치는 본래 타협과 조정의 예술이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은 정의의 이름을 독점하며 국민을 뒤로 밀어낸다. 힘 있는 자가 스스로를 정의라 부르는 순간, 반드시 견제받아야 한다. 국민은 더 이상 독선의 정의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책임, 상식, 그리고 협력이다.

정치는 정의의 이름을 빌려 독선의 길을 가는 순간, 이미 국민으로부터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