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앞에서 파란색과 빨간색 캐릭터가 줄다리기를 하는 정치 풍자 만화.

[프레스큐=공경진 기자] 정치인에게 팬덤은 든든한 방패이자 위험한 칼이다.

팬덤은 정치적 기반이자 강력한 동력으로, 정치인의 메시지를 확산시키고 위기 때 지지를 결집시키는 힘을 가진다. 그러나 그 힘이 지나치게 강해질 때 정치인은 자신이 만든 팬덤에 휘둘리며 스스로의 판단력을 잃게 된다.

정치가 대화와 타협의 영역이 아닌 진영 간 응원전으로 변질되는 순간, 민주주의의 균형은 흔들린다.

정당 중심의 정치 구조가 약화된 자리를 개인 브랜드 정치가 대체했고, 그 중심에는 팬덤이 있다. 팬덤은 정당보다 빠르고 강하게 움직이는 유기체다.

특정 정치인을 향한 절대적 지지는 정치인에게는 보호막이지만, 동시에 굴레가 되기도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궤적은 그 양면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손가혁’과 ‘개딸’로 이어지는 팬덤의 열성적 지지 속에 대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집권 이후, 팬덤의 강경한 요구와 국민 전체의 시선 사이에서 미묘한 균열이 생겼다. ‘내란 잔당 척결’과 같은 과격한 표현이 지지층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도층의 피로감을 불러온 것이다.

사진=뉴시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60% 안팎으로 유지되고 있으나, 부정 평가는 30% 중반에 고착되어 있다.

이 수치는 팬덤의 결집 효과가 일정 부분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만큼 외연 확장이 정체돼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당과 야당 모두 팬덤에 의존하는 정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강성지지층의 요구와 중도 확장의 필요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치의 중심이 공론장에서 감정의 무대 위로 옮겨가고 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강성지지층의 결집 때문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형성된 이른바 ‘윤석열 바람’의 영향이 컸다.

정권 교체 직후 특유의 컨벤션 효과가 중도층의 표심까지 흡수하면서 여당은 전국적으로 우세한 결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 환경은 다르다. ‘내란 잔당 척결’과 같은 과격한 언어에 대한 피로감이 확산되고, 다수당의 독주가 누적되면서 정치 전반에 피로도가 쌓이고 있다.

여당과 정부의 지지율이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는 이 시점에서 내년 지방선거는 이러한 정치 피로감이 표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국민의힘이 어떤 전략으로 중도층의 피로감을 해소하고, 균형감 있는 정치 이미지를 회복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이다.

청년층의 정치 피로도도 눈여겨봐야 한다. 팬덤정치의 중심이었던 20·30대는 이제 정치적 피로를 느끼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정치 콘텐츠 소비는 줄고, ‘정치 무관심층’이 늘고 있다. 만약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청년층 투표율은 크게 하락할 것이고, 팬덤의 결집력에 의존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심각한 타격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대로, 팬덤에 기대지 않고 진정성 있는 정책과 생활밀착형 메시지로 접근하는 신인 정치인들이 주목받을 가능성도 있다.

정당의 역할 회복 여부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팬덤이 주도하는 정치에서는 정당의 시스템이 약화되고, 공천 과정마저 팬덤의 입김에 좌우될 수 있다.

만약 내년 지방선거가 또다시 팬덤 대결로 흘러간다면, 정치의 본질인 정책 경쟁은 사라지고 감정의 충돌만 남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정당이 내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정책 중심의 공천과 메시지를 강화한다면 선거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제 정치인은 팬덤의 소리를 듣되, 그에 휘둘리지 않을 줄 알아야 한다. 팬덤을 기반으로 서되 그 위에 서야 한다. 팬덤의 열광 속에서 단기적 인기를 얻을 수는 있지만, 그 열기가 식으면 남는 것은 냉혹한 현실뿐이다.

정치의 본질은 결국 ‘누가 더 멀리 보고, 더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담는가’에 달려 있다. 내년 지방선거의 승부는 열광이 아니라 균형감각에서 결정될 것이다. 확성기를 든 정치인이 아니라 나침반을 든 정치인이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것이다.

정치의 온도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살아남는다. 팬덤의 열기를 품되, 이성의 통제력으로 방향을 잡는 정치인만이 다음 선거 이후에도 정치의 중심에 남을 것이다.